2019년 10월 18일 금요일
한시 · 한문 강좌 5강 후기
시민시대 홍기자님이 취재를 오셔서
함께했습니다.
薄薄酒
蘇軾
薄薄酒 勝茶湯 (박박주 승다탕)
粗粗布 勝無裳 (추추포 승무상)
醜妻惡妾勝空房 (추처악첩승공방)
五更待漏靴滿霜 (오경대루화만상)
不如三伏日高 (불여삼복일고)
睡足北窓凉 (수족북창량)
珠襦玉匣 (주유옥갑)
萬人祖送歸北邙 (만인조송귀북망)
不如縣鶉百結 (불여현순백결)
獨坐負朝陽 (독좌부조양)
生前富貴死後文章 (생전부귀사후문장)
百年瞬息萬世忙 (백년순식만세망)
夷齊盜跖俱亡羊 (이제도척구망양)
不如眼前一醉 (불여안전일취)
是非憂樂都兩忘 (시비우락도양망)
멀건 술도 끊인 차보다는 낫고
거친 옷일망정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추하고 악한 처첩일망정 빈방보다 낫다네
오경의 신발 가득히 서리 맞아야하는 벼슬살이보다는
삼복에 해가 높이 솟을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북창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 쐬는 것보다 못하네
구슬로 장식한 수의 입고 옥으로 만든 관에 넣어져
만인의 葬送(장송) 받으며 북망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누덕누덕 꿰맨 남루한 옷 입고
홀로 앉아 아침 햇볕 받으며 살아가는 것만 못하네
살아서는 부귀 누리고 죽으면 문장 남겨지길 원하나
백년도 한 순간이요 만세도 바삐 지나갈 뿐
백이 숙제건 도척이건 죽어 없어지긴 마찬가지이니
지금 당장 취하여
옳고 그름과 근심 즐거움을 모두 잊는 것만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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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저녁에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더듬어보고
당송 8대가로 꼽히는 문장가의
글에 푹 빠져보았습니다.
온갖 불만과 욕심을 버리고
한 잔 술에 大醉해보고 싶은 밤이었습니다 다시 推句로 돌아가
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
산이 고요하니 태고시대와 같고
해가 기니 소년과 같도다
靜裏乾坤大 閒中日月長
고요한 속에 하늘과땅이 큼을 알고
한가한 가운데 세월이 긺을 느끼도다
耕田埋春色 汲水斗月光
밭을 가니 봄빛을 묻고
물을 걸어 오니 달빛도 함께 떠 있도다
西亭江上月 東閣雪中梅
서쪽 정자에는 강 위에 달이 떠오르고
동쪽 누각에는 설중매가 피었도다
飮酒人顔赤 食草馬口靑
술을 마시니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고
풀을 먹으니 말의 입이 푸르도다
白酒紅人面 黃金黑吏心
흰술의 사람의 얼굴을 붉게 하고
황금의 관리의 마음을 검게 하도다
老人扶杖去 小兒騎竹來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가며
아이는 대나무를 타고 오도다
男奴負薪去 女婢汲水來
남자 종은 나무섶을 지고가며
여자 종은 물을 길어 오도다
松作延客蓋 月爲讀書燈
소나문는 손님을 맞는 덮개가 되고
달은 책을 읽는 등불이 되도다
花落憐不掃 月明愛無眠
꽃이 떨어지니 사랑스러워서 쓸지 못하고 달이 밝으니 잠을 이룰 수 없도다
月作雲間鏡 風爲竹裡琴
달은 구름 사이의 거울이 되고
바람은 대나무 속의 거문고가 되도다
掬水月在手 弄花香滿衣
두손으로 물을 뜨니 달이 손 안에 있고 꽃을 희롱하니 향기가 옷에 가득하도다
五夜燈前晝 六月亭下秋
한밤중이라도 등잔불 앞은 낮과 같고 유월 정자 아래는 가을처럼 시원하다
歲去人頭白 秋來樹葉黃
세월이 가니 사람의 머리가 희어지고 가을이 오니 나뭇잎이 노랗게 되는구다
雨後山如沐 風前草似醉
비 온 뒤의 산은 목욕한 듯하고
바람 앞의 풀은 술취한 듯 하도다
人分千里外 興在一杯中
사람은 천리 밖에 떨어져 있고
흥은 술 한 잔속에 있도다
春意無分別 人情有淺深
봄 뜻은 분별이 없으나
인간의 정은 깊고 얕음이 있도다
山外山不盡 路中路無窮
산 밖에 산이 있어 산이 다하지 않고
길 가운데 길이 끝이 없도다
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날이 저무니 푸른 산이 멀리 보이고
날씨가 추우니 초가집이 쓸쓸하게 보이는구나
小園鶯歌歇 長門蝶舞多
작은 정원에는 꾀꼬리 노래 그치고
큰 문에는 나비들 춤이 많도다
風窓燈易滅 月屋夢難成
바람부는 창문에는 등잔불이 꺼지기 쉽고 달이 비추는 집에는 꿈을 이루기 어렵도다
日暮鷄登柾 天寒鳥入畯
날이 저무니 닭이 홰에 오르고 날씨가 추워지니 새들이 처마 밑으로 들어오는도다 나옹화상의 유명 시 한 편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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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懶翁禪師 1320 ~ 1376)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속성은 아(牙)씨인데 고려 말 예주부(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조선태조(朝鮮太祖)의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스승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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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후한 때 양진의 고사 四知에 대하여
"君子(군자)는 홀로(獨) 있을 때를 조심(愼)한다"
신기독(愼其獨),
소위 사지(四知)의 고사(故事)를 남긴 후한의 명재상 양진(楊震 ?~124)의 청렴한 처세에서 나온 말.
그는 '관서(關西)의 공자'라고 칭찬 받던 청렴하기로 이름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동래태수(東萊太守)로 부임하던 도중 창읍(昌邑)에 이르렀을 때인데, 일찍이 양진에게서 무재(茂才)로 천거를 받아 벼슬하던 창읍령(昌邑令) 왕밀(王密)이 밤중에 양진을 찾아왔습니다.
왕밀은 금 열 근을 바치면서 “밤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며 지난날의 일을 사례하려 했습니다.
양진이 소위 天知 神知 我知 子知 何謂無知 하며 황금 열근을 거절한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이는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알 자가 없다고 하는가"라는 말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자신을 스스로 삼가야 한다는 철학을 말 한것입니다.
물론 왕밀은 부끄워 하며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자(君子)는 명불기천(明不欺天)하고 유불기신(幽不欺神)하고 내불기심(內不欺心)하고 외불기인(外不欺人)하니라”고, 즉 "군자는 밝은 대면천지엔 하늘이 알고 있으니 속일 수 없는 일이고, 은밀한 곳에선 귀신이 알고 있으니 속일 수 없고, 안으로는 양심이 알고 있으니 속일 수 없고, 밖으로는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속일 수 없는 일이다"고 합니다.
원문
楊震 所擧荊州茂才王密 爲昌邑令. 謁見 懷金十斤, 以遺震. 震曰, 故人知君 君不知故人 何也. 密曰 莫夜 無知者. 震曰, 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 密愧而去.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던 愼獨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더욱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도를 지킨다
얼마나 멋집니까
아무도 안 보는데
지킨다니요? 이 가을에 생각나는 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煙突)의 붉은 빛난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히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陰影)과 윤택(潤澤)과 색채(色彩)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매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바라지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 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이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로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 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데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의 그 태고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비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童話)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늘 들어가는 집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속에서 천국을 구경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불과 -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의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되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낱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색전기도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책상 앞에 붙은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 새 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경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些事)에 창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가을이면 떠오르는 시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을 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 얹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 주옵소서.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빛을 주시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합니다.
지금 홀로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살 것이며
잠자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바람에 나뭇잎이 구를 때면 불안스레이
이리저리 가로수 사이를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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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충담사의 10구체 향가도 더듬어보았습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咽嗚爾處米
露曉邪隱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沙是八陵隱汀理也中
耆郞矣貌史是史藪邪
逸烏川理叱積惡尸
郞也持以支如賜烏隱
心未際叱 兮逐內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高支乎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 현대어 풀이 ]
구름을 활짝 열어 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을 쫓아 떠나니 어디인가
새파란 강물에
기파랑의 얼굴이 비쳐 있구나
여울내 물가에
임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쫓고 싶구나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서
서리조차 모르실 화랑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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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초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비극의 시인 굴원에 얽힌 이야기.
굴원이 벼슬에서 쫓겨난 뒤 강가에서 서성이고 늪가에서 거닐며 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은 말라있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쩌다가 여기에 이르렀소?”라고 하자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에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어서, 이 때문에 추방을 당하였소.”라고 하였다.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상대에게 얽매이지 않고 세속과 더불어 옮겨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리면 어찌하여 그 진흙탕을 휘저어 그 물결을 날리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취했으면 어찌하여 그 술지게미를 먹고 그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시오.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높이 행동하여 자신을 쫓겨나게 하였소?”
굴원이, 대답하기를, “내가 들으니,
‘새로 머리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하였소. 어떻게 자신의 깨끗함으로 상대의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수의 물결에 뛰어들어 강의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질지언정 어떻게 희고 흰 결백함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저어 떠나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수 있다네.”라고 하고는 마침내 떠나서 더 이상 함께 말하지 않았다.
中庸이란 어떤 뜻인가?
→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는 상태.
그러면서 둘을 포용하는 상태
예컨데,
진나라 때 平公이라는 사람은
인재를 추천할 때
비록 원수지간이라할지라도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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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의 명문장 소개
所謂齊其家, 在修其身者 는
人이 之其所親愛而辟焉 하며
之其所賤惡而辟焉 하며
其所畏敬而辟焉 하며
之其所哀矜而辟焉 하며
之其所敖惰而辟焉.하나니
故로 好而知其惡 하며
惡而知其美者 는 天下에 鮮矣.니라
故 로 諺에 有之,하니
曰 人이 莫知其子之惡, 하며
莫知其苗之碩.이라하니라
此謂身不修,면 不可以齋其家.니라
이른바 그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그 자신을 닦는 데 달려있다. 내 말과 행동이 자신의 집착하는 것에 치우치면 가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내가 친애하는 사람은 아주 옳다고 여기고, 내가 싫어하는 이에겐 아주 냉담하고, 내가 두려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정색하고 , 내가 아끼는 것들은 아주 끔직이 챙기고, 내가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해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 좋다고 할 가족이 어디 있는가, 집안이 가지런해질 이치가 없지 않은가. 사람은 그 자식이 악한 것을 알지못하고, 그의 곡식 싹이 크다는 것을 알지못한다. 자기 몸을 먼저 닦아야 가정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
과연 명문장으로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사자성어
老馬識途
臥薪嘗膽
麥秀之嘆
刎頸之交
不恥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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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의 에문들을
명문장에서 찾아와 감동이 더 컸습니다.
靑出於藍 而靑於藍
霜葉紅於二月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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